아내

안톤 체호프 | 유페이퍼
  • 등록일2016-08-16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489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 평점 평점점 평가없음

저자소개

안톤 체호프 셰익스피어와 비교될 만한 세계적인 극작가이며, 러시아의 모파상이라고 불리는 19세기 러시아의 마지막 산문작가이며, 의사이기도 했다.
그는 짧은 생애동안 600여 편의 작품을 썼으며, 산문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대략 8500여명에 이른다. 그들은 소시민이거나 잡계급 계층 사람들, 인텔리겐차 등이며, 그 중에서도 아동은 늘 즐거운 기분에 빠져있으면서도 가장 쓸모 있고 필요한 존재로서 거의 300명에 이른다고 체호연구가 그로모프는 말했다.
체호프는 인간의 평범한 삶에서 계속되는 일상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삶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애썼던 작가에 속한다. 1890년에 사할린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사회적인 비판의식이 성숙되어 가면서 톨스토이의 문학적 경향에 반대하고 사회악이나 사회적인 복잡한 문제 등을 다룬 중편소설들을 발표했다. 후기에 들어서는 희곡작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점차 몰락해가는 구 귀족들이나 인텔리겐차의 정신적 상실을 보여주면서도 밝은 미래를 예감하는 호소력 있는 연극들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특히 톨스토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체홉의 심리주의 묘사는 절정에 이르러 이후의 현대 러시아산문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체홉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도 20세기 러시아현대문학을 열었던 고리키에게 전수되었다.

체호프는 1860년 1월 17일에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5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시절에 학비를 위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881~1887년까지 안또샤 체혼떼, 아. 체혼떼, 환자 없는 의사, 성미 급한 사람, 내 형의 아우, 지라가 없는 사람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지방자치회 병원에서 한때 의사로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1886년부터 톨스토이 사상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1888년에 크리미아, 카프카즈, 우크라이나 여행하고 와서 단편집 『아동들』을 발표했다. 1890년 4~7월 사할린 여행하고 이듬해에 『사할린 섬』을 집필했다. 1894년에 톨스토이주의와 결별을 선언했고, 건강이 악화되어 크리미아로 여행해서 얄타에 머물렀다
1895~1901년에 희곡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을 발표하었다. 1904년 아내와 독일로 요양 차 떠나 남부독일의 광천지 바덴바일러에서 7월에 사망했고, 7월 9일, 모스크바 노보제비치이 수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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